한국의 미 _ 조선 왕궁 경복궁

도성(4대문 안쪽)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북궐(北闕)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되어 초기에 정궁으로 사용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다.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5칸에 상하층 월대(月臺)와 행랑•근정문•천랑(穿廊)•각루(角樓)•강녕전(康寧殿) 7칸, 연생전(延生殿) 3칸, 경성전(慶成殿) 3칸, 왕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報平廳) 5칸 외에 상의원•중추원•삼군부(三軍府) 등이 마련되었다.

궁의 명칭은 『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서 경복궁이라고 지었다.

정종이 즉위하면서 도읍을 다시 개성으로 옮기어 궁을 비우게 되었으나, 제3대 태종 때 또 다시 환도하여 정궁으로 이용되었다.

태종은 궁내에 경회루(慶會樓)를 다시 지었는데, 연못을 넓게 파고 장대한 누각을 지어 임금과 신하가 모여 잔치를 하거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으며,
파낸 흙으로는 침전 뒤편에 아미산(蛾眉山)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경회루의 모습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1553년에는 궁내에 불이 났는데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交泰殿)•연생전•흠경각•사정전(思政殿)을 복
구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다.
궁의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이다.

아래 사진은 개인적으로 경복궁내에서 두번째로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해내는 항원정이다. 물론 그 첫번째는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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