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유산 탐방 -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언제 또 갈수있을까 - 호주 시드니"





그 때는 20066월경 이었다. 내가 호주를 방문하던 때가
내가 호주를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 방문하게 되었다. 일 때문에 방문하게 된 호주였지만, 일은 하루 일정으로 마무리하였고, 나머지 3일은 관광으로 진행하였기에, 생각보다 많은 곳을 둘러봤던 시간이었다.

많은 조사에서 외국에 나가 산다면, 가고싶은 곳이 어디인지를 묻는 질문에, 많은 한국 사람들은 호주를 꼽는 경우가 많다. 이는 넓은 면적에 적은 사람이 살고있고, 푸른 자연이 어우러져 있으며, 날씨도 화창한 것이 좋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드니(Sydney) 호주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로서 도시권의 인구가 약 475만 명에 이른다. 시드니는 뉴사우스웨일즈주의 행정도시이며 호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식민지가 있던 자리이다. 그 식민지는 영국에서 온 선단 퍼스트 플리트(First Fleet)의 선장인 아서 필립 (Arthur Phillip)에 의하여 시드니 코브(Sydney Cove) 1788년에 세워졌다. 시드니는 행정구역상 센터럴시티역 주변의 1개 행정자치구(Council)의 명칭으로 시드니 주변 지역의 주소에서는 시드니(Sydney) 라는 지명이 들어가지 않는다.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이다. 2000년에는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가 되었다.

시드니 항구 연안에는 적어도 4만년 전부터 원주민이 정착했다. 시드니라는 이름은 당시 영국의 각료였던 시드니경()의 이름을 딴 것이다.
유럽인의 관심이 이 지역으로 생긴 것은 1770년 제임스 쿡의 포트 잭슨 만의 발견 이후이다. 영국의 아서 필립 선장은 사상 초유의 "화물"을 머나먼 대륙으로 이송해야 했다. 그는 영국에서 추방된 죄수 700명과 선원 450명을 11대의 배에 나눠 싣고 영국에서 호주 동쪽 해안까지 7개월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17881 18, 11대의 배는 다른 뱃사람들이 배를 정박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추천해 준 곶()에 도착했다. 영국인에 의한 최초의 이주민은 1788 1 20일에 아서 필립 총독에 의해 시드니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호주 최초의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필립은 처음 이 땅을 알비온이라고 부를려고 했지만, 시드니 후미에서 유래한 "시드니"가 일반적으로 이용되게 되었다. 시드니 만은 쿡이 지은 것으로, 그의 후원자였던 시드니 경 (시드니 자작) 토마스 타운젠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것은 식민지 설립을 허가하는 특허장이 시드니 경의 알선으로 교부하였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신식민지의 초기의 인구는 1000명을 겨우 넘는 정도였지만, 당시는 유배지로 인구 대부분은 죄수였다. 1822에는 벌써 은행, 시장, 발달한 도로망, 경찰조직을 갖춘 마을이 되었다. 1833, 마을의 행정은 3명의 행정관의 손에 운영되어 1842년에는 자치체가 되었다. 1847에는 죄수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불과 3.2%에까지 내렸갔다. 당시 시드니에는 유럽에서 매주 배가 들어왔으며, 영국이나 다른 유럽 지역에서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죄수의 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따라, 상업 활동이 왕성해졌다. 처음에는 벽돌 제조와 제재에 한정되어 있던 제 2차 산업의 발전은 뉴사우스웨일즈의 자유무역 정책이 현지 공업의 안정을 저해했기 때문으로 지적되었다. 1901년의 연방 성립후, 자유무역 정책은 유명무실해졌고, 각 주간의 긴밀한 제휴 하에서 주간 교역이 현저한 진전을 이루었다.
시드니는 19세기 전반까지는 호주 6개의 영국 식민지의 중심으로 명실상부한 최대의 도시였다. 1851년에 뉴사우스웨일즈 주와 빅토리아 주에서 금이 발견된 최초의 골드 러시가 이루어 지면서 시드니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골드러시와 영국 본국과의 사이 대권 항로에서 멜버른이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멜버른이 발달 속도를 높여 19세기 후반에 시드니는 제 2의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의 전통적인 경쟁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멜버른은 호주의 최대 도시이자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20세기가 되면서 시드니가 다시 멜버른 인구를 추월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드니는 국내 최대의 도시로 계속 자리 잡고있다. 1970년에서 1980년대, 호주연방 준비은행과 호주 증권거래소와 함께 시드니의 CBD는 분명히 국내 최대의 금융 도시가 되어 멜버른을 제쳤다. 도시 지역의 확대와 함께 인구의 교외화가 진행되어 도시 지역의 서쪽은 도심에서 60 km 이상 떨어진 블루 마운틴 기슭에 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20 세기 전반에 걸쳐 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10년간을 더욱 크게확장되었고, 유럽과 이후 아시아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시드니의 도시 지역은 확대를 계속했다. 시드니의 특징인 다양한 국제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이민자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가 주된 요인이다.
시드니는 호주 대륙 남동쪽 기슭의 포토 잭슨 만(시드니항) 및 보타니만에 접하는 항만 도시이다. 사방은 장대한 대자연에 둘러싸여 있어 동쪽으로 태평양, 서쪽으로 블루 마운틴, 북쪽으로 호크스베리카와, 남쪽으로 로열 국립 공원이 있다. 게다가 시드니는 많은 후미나 해안을 가지고 있다. 본다이 비치는 특히 유명한데 시내에서 가까운 포토 잭슨 만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세계 최대의 천연의 입강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이 풍부한 자연이 풍족한 시드니이지만, 자연 재해인 지진은 인체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무감 지진을 제외하고 거의 없다.
시드니에는 오페라 하우스, 하버 브리지, 본다이 비치,시립 동물원인 타롱가 동물원 등 수없이 많은 관광 명소들이 있고 호주에서만 시식이 가능 한 캥거루 햄버거, 캥거루 스테이크도 맛볼 수 있다.


 시드니 본다이 비치

본다이비치(Bondi Beach)는 시드니 외곽에 위치한 해변으로 중심 업무 지구에서 동쪽으로 약 7 킬로미터에 위치한다. 남태평양과 맞닿아 있어 파도가 높은 이 해변의 이름인 Bondi 혹은 Boondi 는 어보리진 언어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많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광객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본다이비치는 매 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지역으로 파도가 높아 서핑을 하기에 적합하여 많은 서퍼들이 높은 파도를 타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다. 인명 구조대는 2004 해변의 위험등급을 정하면서 본다이 비치의 북쪽 해변의 끝부분에 4등급, 남쪽 해변에 7등급을 부여했다. 이 등급은 10단계의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0등급이 가장 위험함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는 해변의 중앙 부분은 5등급을 부여받았다. 이 해변에는 이따금 상어가 출몰하여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 그물이 물 밑에 설치되어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1973년에 문을 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 1547석의 오페라 극장과 2679석의 음악당을 비롯해 여러 개의 극장, 전시관, 도서관 등이 있다. 이곳은 가장 유명하고 인상적인 20세기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세계에서 유명한 공연장의 하나이다. 공원 지역과 함께 하버 브리지, 베넬롱 포인트에 있다.
남쪽으로는 시드니의 유명한 다리인 하버 브리지와 가까우며 시드니 하버 브리지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주변의 풍경은 호주의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 건물의 특이한 지붕 모양은 국제 디자인 공모전의 우승작 작가인 덴마크의 건축가 이외른 우촌이 오렌지 껍질을 벗기던 도중에 떠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분적으로 원형의 모양인 바깥 표면은 자주 그 곳을 항해하는 범선의 소함대을 떠올리게 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비록 많은 관광객이 공연 관람에 관심이 없더라도 시드니의 주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발레와 음악 공연, 오페라가 열리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오페라 극단, 극장단, 교향 관현악단 상주지이며 뉴사우스웨일즈 주 문화부 장관 산하 기구인 오페라 하우스 기금에 의해 운영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선정되었다.
오페라하우스의 진수는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아닐까 한다. 아름다운 건축물에 조명으로 장식한 오페라 하우스는 유람선위의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게 만들만큼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람들은 무던히도 노력한다.
나 또한 아름다운 사진을 건지기 위해 열심히 찍었지만, 카메라의 한계로 인해 당시에는 좋은 사진을 구할 수가 없었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Sydney Harbour Bridge)는 시드니 도심에 위치한 철제 아치교로, 세계에서 4번째로 긴 아치교이다.
시드니 중심상업지구와 북쪽해변 사이의 시드니항을 가로질러 철도, 차량, 자전거와 보행자의 통행을 담당하는 주 교량이며, 인접해있는 오페라 하우스와 함께 시드니와 호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아치교 특유의 디자인으로 인해 시드니 지역 사람들에게는 "옷걸이 (The Coat Hanger)"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1923 728 착공을 시작하여 8년이 넘는 공사 기간 끝에 1930 10월에 아치 구조물이 완공되었으며 1932 1 19 최종 완공 이후 1932 319일에 개통되었다.
이 하버브리지를 잘 보기 위해서는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버브리지를 보기위해 건너편 공원에 모여든다. 앞서도 말했지만, 호주는 매일 매일의 날씨가 화창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도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싶다.

블루 마운틴 세자매봉


블루마운틴이란 이름은 멀리서 보았을 때 진한 푸른 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푸른 빛은 유칼리나무에서 증발된 유액 사이로 태양광선이 통과하면서 파장이 가장 짧은 푸른 빛을 반사하면서 생긴 것이다. 91종이나 되는 다양한 유칼리나무들이 주종을 이루는 숲의 특징에서 연유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산지의 대부분은 붉은 색을 띤 사암층(砂岩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곳곳에서 사암이 침식되면서 생긴 수직절벽들을 볼 수 있다.
블루마운틴 산악지대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카툼바(Katoomba) 지역의 에코 포인트(Echo Point). 세자매봉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바위산을 비롯해 블루마운틴의 탁 트인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세자매봉은 비슷한 세 개의 사암 바위가 융기한 형태로 주술사가 마왕에게서 세 자매를 보호하려고 돌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에코포인트에서는 최대 경사면이 52도에 이르는 가파른 협곡을 달리는 궤도열차를 타고 협곡 깊은 곳까지 구경할 수 있다. 1880년대에 협곡 아래 탄광에서 석탄과 광부들을 나르기 위해 설치되었다는 궤도열차는 가장 가파른 지역을 달리는 열차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고 한다.
산악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폭포와 14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던 원주민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블루마운틴 관광의 묘미다. 블루마운틴은 또한 91종의 다양한 유칼리나무, 올레미아소나무를 비롯한 희귀 식물과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학적 가치도 무척 높은 곳이다.
하지만 블루마운틴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역시 멀리서 바라 보았을 때의 신비로운 푸른 빛이다. 나무의 수액이며 햇빛 반사 같은 과학적인 요인을 따지기 이전에 경이로움으로 다가오는 푸른 빛의 안개야말로 진정 블루마운틴을 잊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이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가봤으면 하는 나라이다. 제일 좋아하는 도시가 파리이며, 그 다음이 시드니까 아닐가 싶다. 두 도시는 너무나 다르지만, 그 다름만큼 큰 매력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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